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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쟁이가 된 그녀

빈칸을 채워주는 사람 2024. 3. 13. 00:34

딸은 어렵다. 그녀는 아기때부터 잘 웃지 않았다. 화가 날 때도 못마땅할 때도.. 무표정이었다. 격해지면 뿌앵하고 울었다. 좋을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껏 고양되어야 크게 웃었다. 딸 덕에 육아책도 참 많이 본 것 같다. 지금까지 내 인생 고민의 8할은 모두 딸과 관련된 것이었으니까... 본격적으로 딸의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난 참 많이 울었다. 가녀린 몸처럼 멘탈도 흔들렸던 것일까, 딸은 새로운 학교에 적응을 힘들어했고, 그 시기에 나는 여러 선생님들과 참 길고긴 대화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녀는 이제 완연한 청소년이 되었다. 화장을 시작했고, 연애도 한다. 여전히 잠을 안자고, 편식이 심하며, 한번 나가면 연락이 어려워졌고, 주말엔 집에 .. 없다. ;; 길고 긴 대화와 설득(가끔은 협박), 때로는 애원, 정중한 부탁을 넘나들며 최소한의 경계를 설정하였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 적응하면서 살고 있다. 

 

그게 참 신기하긴 하다. 걱정스러운 행동, 그녀의 거친 언어들이.. 사라진건 아니다. 아이는 늘 똑같은데, 내 반응이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포기와 체념이라고 생각했고, 어떤 코치님은 수용이라고 해주셨다. 통제는 불가능하니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 그래도 부모니까 경계를 설정해주고, 반복적으로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싸워줘야 해, 그게 우리 역할이야" 선배의 말이다.

아 그래, 포기와 받아들임 속에서 줄다리기 하던 그 긴장이 툭 하고 내려진 느낌이었다.

 

요즘 들어 그녀가 자꾸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극혐하는 급식 메뉴, 싫어하는 과목, 맘에 안드는 선생님들, 친구들 등등 조잘조잘 잘도 떠들어댄다. 내용은 어두운데, 분위기는 밝다. 반가웠다.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되는 건가 싶었다. 특히 어제는 유난히 기분이 좋아보이길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물었더니

"글쎄, 내가 화장도 하고 렌즈도 꼈는데, 선생님이 못알아보신거야. 나만 안혼났어 호호호 아싸 선생님 바보"

 

끙;; 이건 뭐.. 어머 잘됐다. 할 수도 없고, 에휴 넌 어쩜 그러니도.. 안되고. ㅎㅎ

"다행이네..  음.. 그래도 난 지적받지 않고 학교생활 하면 좋겠는데?"

"에휴 알겠어, 알겠다고~~~"

"그래도 학교를 잘 다니니 너무 안심이 된다. 요즘 엄마한테 이런 저런 얘기도 해줘서 고맙고... (쌩)..."

 

감사와 감동을 함께 전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사라졌다. 딸에 대한 번민이 사라지려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소소한 일상을 내게 나누어 주어 고마웠다. 나는? 조금 더 다정하게, 조금 더 친절하게, 그리고 싸워주어야 할 땐, 싸워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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