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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put/스크린 속 인생 코칭

가장 특별한 시간여행

빈칸을 채워주는 사람 2023. 4. 10. 15:23

낭만의 도시 파리를 배경으로 한 타임슬립 영화가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주인공은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에 이끌려 1920년대의 어느 술집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그는 평소에 동경했던 예술가들,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살바도르 달리, 피카소 등을 만난다. 낭만이 가득했던 그때를 '황금시대'라고 칭송했던 그는 1920년대 현재를 살면서 지루함과 허무함에 빠져 사는 예술가들을 본다. 그들은 과거 1890년대의 파리의 벨 에포크 시대를 동경하고, 또 그 시대의 거장들은 르네상스 시기를 가장 낭만적인 과거였다고 칭송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황금시대 로망을 조금 더 냉정하게 바라본다. 과거를 동경하는 것은 어쩌면 현재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은 아닐까, 그래서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황금시대는 언제인가?'

 

나에게도 시간여행을 도와주는 종소리가 있다. 클라우드는 하루에 한 번, 알림을 전송해온다. "(띵동) 18년 전, 오늘의 이야기를 확인하세요". 시스템 동기화일 뿐인데, 이 종소리는 내게 추억 여행을 보내주는 티켓과도 같다. 클라우드에 저장해놓은 사진첩에는 내게 처음 디카가 생겼던 2003년부터 현재까지의 나의 일상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종소리가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나는 과거로 접속한다. 내가 가장 찬란했던 황금시대로.

 

가장 예쁘고 젊었던 나의 모습은 유쾌하고, 활력이 넘친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척하며 찍은 셀카를 보며, 어떻게 이리 당당한지..어이가 없어 웃음이 날 지경이다. 락페스티벌에서 지치지 않고 뛰던 내가 있고, 친구들과 MT 가서 자지러지게 웃는 내가 있다. 사진 속 반짝이는 눈에는 세상 걸리는 것 없이 20대의 그 순간을 즐기는 나로 가득하다. 호기심과 열정이 가득했고, 재미있는 일상이 가득 채워져 있다.

시간이 지나 언제부턴가 내 사진은 없고, 온통 아이들 사진뿐이다. 어떤 날 알림은 12년 전 과거를 소환한다. 둘째를 낳기 며칠 전 그날은 큰 애가 처음으로 변기에 응가를 했던 날이면서 벤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피겨 금메달을 딴 날이었다. 만삭의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나 보다. 큰아이가 김연아를 흉내 낸다고 변기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고 영상으로 남겨두었다. 사적인 순간과 역사적인 순간을 동시에 남겨둔 것 같아 뿌듯함이 배가 되는 느낌이다. 또 어떤 날은 어린 둘째를 모자와 안경 마스크까지 꽁꽁 싼 채로 차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메르스 창궐 때문에 아이를 할머니 댁으로 피신시키는(?) 과정이었다. 밤 시간대에 찍힌 것을 보니 부부가 합심해서 비밀스러운 작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여져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사진첩 여행은 내게 많은 감정을 일깨운다. 어떤 날은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이미 완결된 과거가 가져다주는 안정감인 것 같기도 하다. 또 어떤 날은 너무 애틋하여 눈물바다가 된다. 이렇게 내가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아이들이 사랑스러웠는데, 우리 엄마 이렇게 젊었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이건 뭘까. 다시 오지 않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인가 회한인가.

황금시대를 향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을 조금 들여다보면 거기엔 내가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감정이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순간에는 나의 모든 과거가 아름다운 일상이다. 그러나 현재가 불만족스럽거나 결핍이 느껴지는 날에는 슬프고, 비참함이 느껴진다. 이는 그때로 되돌아가서 다시 느껴보고 싶은 기쁨이나 행복감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쉬움일 수도 있고, 뜻대로 되지 않는 현재에 대한 실망스러움, 혹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즉 과거의 어느 순간에 머무르는 것은 현재의 나의 감정 상태를 반영해주는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

 

<감정의 발견> 저자 마크 브레킷은 감정을 다루는 가장 첫 번째 단계가 감정 인식이라고 말한다. 감정 그 자체는 너무 동물적이다. 우리의 감각을 순간적으로 마비시켜 헤어 나올 수 없도록 만든다. 이때 감정의 언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정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이성적인 틈이 벌어져 현실을 자각하도록 도와준다. 그다음은 선택의 문제이다. 이 감정을 온전히 수용하는 것, 긍정적인 부분이 없는지 다시 생각하는 것, 그래서 그 다음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방식이 무엇인지 아는 것. 결국 나의 과거로 소환되는 감정에 허우적대지 않고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과정은 건강한 내가 되는데 필수적이다.

나는 이제 수시로 울리는 감정 시간여행의 팁을 알게 되었다. 나를 웃음지게 하거나 눈물짓게하는 것도 하나의 패턴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책에 나오는 다채로운 감정이 보여주는 무드미터는 그런 면에서 매우 실용적이다. 무드미터의 노란색과 초록색 영역에 있을 때는 ‘내가 지금 괜찮은 상태이구나’를 깨닫는다. 빨간색과 파란색의 영역에서 불꽃이 튈 때는 ‘아 지금 내가 힘들구나, 도움이 필요하구나’, ‘뭔가 기대하는게 있구나’를 깨닫는다.

 

파리의 황금시대를 동경했던 주인공이 내게 묻는다. 당신의 황금시대는 언제냐고, 나는 질문을 다시 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당신의 황금시대는 어떤 감정을 가져다주느냐고, 또 그 감정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하고 말이다. 과거를 바라보는 나 역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추억이 소환하는 감정은 어쩌면 현재 우리의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정보이며,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labeling),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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