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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put/스크린 속 인생 코칭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야

빈칸을 채워주는 사람 2025. 1. 20. 14:15

 

 

2025년 1월을 지나가는 이 시기, 밖으로는 혼란과 갈등, 분열의 시대이고 나는 그 시대적 혼란에 맞서 일상을 영위하려 노력하는 소시민이다. 이맘때쯤 나는 항상 방학이다. 아이들이 방학을 맞이하였기도 하고, 프리랜서로서의 삶 역시 잠깐 멈춤의 시간이다. 이 시기는 늘 불안했지만, 이 역시 패턴이라는 것을 알고있따.  또 걱정을 안고 살아도 걱정이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에 의연하게 대처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어제의 나는 습관적으로 일어나서 뉴스를 살폈고, 밤새 또 일어난 폭력의 현장을 접하면서 한숨이 나왔다. 길고 긴 싸움이겠구나.. 저 경찰들도 뉘집 자식들이고, 가족들일텐데 쉬지도 못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으니 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시간들일까. 화면으로 스쳐지나간 이름모를 사람들을 향한 연민을 뒤로하고 내 일상을 시작했다. 아침 산책을 다녀오고, 집을 정리하고, 밥을 차렸다. 정오가 지나도록 깨지 않은 가족들이 있어 오랜만에 영화를 보기로 했다. 여유님이 지나가는 말로 '퍼펙트 데이즈' 얘기를 해서 내 맘속의 위시리스트로 저장되어 있던 영화였다.

 

올드팝을 좋아하는 화장실 청소부의 이야기라..

알고는 있었지만, 영화는 꽤 잔잔하게 진행되었다. 지루할걸 알면서도 금새 빠져들었다. 특별할 거 없는 하루를 지나가는 주인공 아저씨는 운전을 하면서, 자전거를 타면서 도쿄의 아침과 밤을 열심히 나에게 선물해준다. 문득 지난 일본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삿포로에서 시속 20km 전차를 타고 한 시간을 그저 창문밖 세상을 보았던 그 때. 눈으로 지나친 수많은 사람들을 그야말로 중립적으로, 비판단적으로 그저 바라보았던 그 순간들이 떠올랐다. 

 

주인공 아저씨의 일상은 단조롭다. 누군가의 빗질 소리에 잠을 깨고, 이불을 갠다. 양치를 하고, 수염을 깎고, 작업복을 입고, 집을 나선다. 자판기 캔커피로 목을 축이고, 테이프를 플레이한다. 올드팝이 화면 가득 울려퍼지는데, 벨벳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가 흐르면서 나는 벅차올랐고, 아저씨와 함께 도쿄 시부야의 풍경을 눈에 담으면서 저절로 미소가 새어나온다.

능숙한 솜씨로 청소를 하는 아저씨.. 동료가 묻는다. '청소일 뿐인데,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가' 이 질문에 '일의 의미'를 읊었다면, 그건 내가 기대한 아저씨는 아니였을 것이다. 아저씨는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의 말없음과 무심한 표정은 딱 내가 원하는 모습 그것이었다. 

하루 하루가 똑같다. 는 것은 거짓말이다. 아저씨의 일상은 매일 똑같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일터에서 만나는 이웃도 있고, 조카의 방문에 불편한 잠도 감내한다. 달리 보면 하루하루 일어나는 것들은 하나의 거대한 이벤트였다. 쉬는 시간에 늘 올려다보는 나무 위의 하늘을 필름 카메라로 담는다. 그의 벽장에 간직한 숱한 나날의 나무 위 하늘 그림은 그래서 더 깊은 가치가 있는 거겠지.

 

조카는 삼촌에게 묻는다. 바다는 언제 갈꺼냐고

"다음에"

"다음, 언제?"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말없는 아저씨의 인생관이 묻어나는 이 대사.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이 한마디의 엄청난 메시지.

 

언제, 무엇을 할것이냐.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를 혹은 주변을 들들 볶고 사는지...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버티고 버티다보면 좋은 날이 오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을 관조하듯 사는 것. 어쩌면 나의 별일없는 새해의 일상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저씨는 돌아가면서 또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알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눈물을 흘린다.

모르겠다. 지금 이순간에 대한 감사함인지, 혹은 별 일 없는 일상에 대한 지루함인지, 혹은 지난 날들에 대한 회한인지..아니면 그저 음악이 주는 벅차오름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나도 정의되지 않은 그 순간의 여러 감정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지같은 현실에서 저 일상의 소소함과 단단함이 마치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별 일 없이 지나가길 바라면서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쉬운 순간들이 있다.

그런 나를 향해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 영화. 참 따뜻하고 깊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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