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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put/직업으로서의 코치

코칭으로 굴러온 삶, 굴러갈 삶

빈칸을 채워주는 사람 2025. 12. 12. 21:27

2025년 12월. 한국코치협회의 KSC 인증코치가 되었다. 여러 지인들이 내게 소감을 물어오셨는데 '묵은 똥을 치운 느낌'이라고도 했고, '오만해질 뻔한 인생에 가장 큰 배움이 컸던 1년' 이라고도 했다. 진심이다. 

나의 멘토코치님들과 심사위원들은 나의 '에세이'가 너무 좋다고 피드백주셨다.(그들의 긍정적 반응 이후 탈락은 꽤나 씁쓸한 경험이었다 ㅋ) 그래서 이제, 당당하게 나의 에세이를 공개해본다.

(*KSC 인증은 필기시험이 없고, 코치로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에세이를 제출해야 한다. 주로 코치로서의 비전, 사명, 정체성 등을 담으라고.. 조언을 받았다)


처음 코칭을 접한 것은 2000년대 중반, 신입사원 시절이었다. 그때는 코칭이 한국에 도입되던 시기였다. 외국인 코치가 진행한 코칭 과정에 참관을 한 적이 있었는데, 코칭 시연 후 눈물을 흘리는 참가자를 보며 매우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에 나는 조직심리 전공을 살려 컨설팅 회사에 들어왔고, ‘리더십 과정개발’, ‘역량 모델링’ 등의 업무를 진행중이었다. 문제해결형 인간인 나로서는 그 강의장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 때의 그 경험으로 나는 코칭을 ‘컬트(cult)’ 라고 단정지었다.

 

교육 담당자로 커리어를 이어 나가면서 긍정심리 기반의 리더십, 성장과 변화를 다룬 과정을 주로 맡았다. 자연스럽게 코칭 컨텐츠를 자주 접하게 되었고, 2013년에는 코칭 회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코칭 업(業)으로 전환하면서 많은 일을 수행했다. 고객들에게 코칭을 소개하고, 코칭 과정을 만들고, 코칭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들이 주요 업무가 되었다. 코칭 컨텐츠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좋아했지만, 코치가 되는 것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때 생각한 ‘전문 코치’는 능력과 인품을 겸비해야 가능한 직업이라 믿었고, 학벌이나 경력이 부족해 코치로서 자질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코치가 되기에는 시시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한정하였다. 코칭은 하나의 일이었고,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코칭 자격에 도전했다. 그래서 그 무렵 나에게 KPC 응시는 하나의 ‘승진 시험’ 이었다.

 

코칭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30대 후반부터다. 주변 코치님들이 닿지 않는 청년과 사회초년생들이 나의 고객이 되었는데, 이들과의 만남이 하나 둘씩 늘면서 ‘시시한 존재’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소중한 존재’로 스스로에 대한 격이 올라감을 느꼈다. 진짜 나의 고객들을 진정성 있게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코칭을 다시 처음부터 들여다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저 ‘좋은 말’이라고 느껴졌던 코칭 철학이 새롭게 보였고, 긍정성의 기원이 무엇이고, 왜 목표가 우선적으로 이야기되는지 그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1세대 코치님들과의 인연이 지속되면서 ‘삶에서 진정으로 코칭을 적용하는 사람들’의 참된 어른다움의 면모를 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들이 더러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몇 년 전 감수성 훈련에서 고백한 적이 있는데, 이때 남관희 코치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하셨다.

 

‘이야, 정지 대단하네? 머리에서 가슴으로 바뀌었다는 거지?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지나가며 하신 말씀이지만, 꽤 며칠동안 나를 흔드는 말이었다. 그러게? 내가 왜 이렇게 긍정적이고, 말랑말랑해졌을까? 그 무렵에 만난 (과거 인연이었던) 친구들도 내가 묘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머리로만 이해했던 행복이나 몰입, 강점 등과 같은 추상적인 명제들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깨닫는 시기였다. 아마도 삶에서 일어난 변화들, 배우자와의 관계, 육아, 워라밸, 미래에 대한 고민 등등이 있을 때마다 코칭을 받았던 경험들이 쌓인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 이루고 싶은 것들을 입밖으로 꺼내 이야기하고, 그것을 함께 경청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경험인지를 깨달았다.

 

코치로서의 나의 성장은 계속됐다. 2018년 프로코치로 선언한 후 나는 ‘직장인 3년차 코칭’을 내걸고 고객을 모집했다. 사회초년생,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MZ세대가 추구하는 가치와 욕구를 다룬 책을 출간하게 되었고, 내가 사랑하는 심리학 공부를 더 하고 싶어 박사학위까지 도전을 했다. 공부를 할수록 때때로 코칭이 더 어렵다고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 이 유서 깊고, 방대한 이론들을 코칭에 잘 녹여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현재 나의 고객은 MZ세대의 청년들, 대학생들 그리고 기업의 영(young) 리더들이다. 내가 이렇게 코칭으로 굴러왔듯이 그들도 언제 어디서나 코치와 연결되어 자신을 돌아보고, 지금 이순간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을 통해 점차 더 좋은 개인, 시민들이 되길 바란다. 그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동력으로 바꿔 보도록 하고, 인생의 빈칸을 채워 나갈 수 있도록 도우며, 점차 더 좋은 어른으로 성장시키는데 기여하고 싶다. 그래서 대학생들을 위한 코칭, 커리어 전환기에 필요한 코칭 과정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또 코칭 심리와 관련된 연구 영역 또한 확장하고 싶다. 코치들의 발달 단계, 코칭 방법론 비교 등 실무와 연구를 통합시킴으로써 코칭이 ‘그냥 좋다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즉 코칭은 컬트가 아니라 과학적 기반을 갖춘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내세울 수 있는 ‘과학적 실천가’로 활동하고자 한다. 그런 측면에서 KPC가 나에게 ‘승진 시험’이었다면, KSC는 코치로서 해내고 싶은 일이 더 많아졌기에 도전하는 ‘전문직’으로서의 도전을 의미한다.

코칭으로 굴러온 삶에 감사한다. 고객들과는 지속적으로 교학상장의 기쁨을 맛본다. 나의 직업적인, 개인적인 성장은 크롬볼츠 박사가 이야기한 ‘계획된 우연(Planned happenstance)’의 가장 좋은 예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