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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본문
나에게 이어령 선생님은 '축소지향의 일본인' 책 저자라는 것,
명절이나 연초에 신문사마다 인터뷰 대담의 단골 스피커라는 것, 정도만 알았다.
인터뷰 기사나 강의 요약된 내용만 보더라도 얼마나 이분이 생각이 깊고, 다채롭고, 통찰이 빛나는지..
정말 '시대의 지성인'이라는 표현이 걸맞고, 우리나라에 이런 분이 계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늘 했다.
나이가 이렇게 드셨다는걸 실감 못하다가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기사를 보고서, 마음이 안좋았는데
이런 아쉬움이 가득한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말과 글로 사람을 홀려버리시는구나..
김지수 작가 역시,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텔러이다.
정유정 작가와의 인터뷰도 재미있게 읽었고,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는 나의 favorite 이다.
이 책은 이어령 선생님의 삶의 고통, 죽음, 대화, 등등 다양한 주제로 나눈 대담의 결과이며, 예술과 인문학과, 종교와 어원(기호학)을 넘나들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해볼 질문과 조언이 제시되어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어쩜 이렇게 지혜로울 수 있는지'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이어령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만, 메모해놓은 걸 한번씩 들여다보며, 순간의 생각을 꽉 붙잡아야겠다.
"interest라는 영어 단어는 관심, 재미라는 뜻도 있지만 이익, 이자라는 뜻도 있어. 우리가 이익을, 이자를 내려면 애초에 관심 있는 것, 흥미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해. interest가 출발이지. 그게 모든 일의 순서고 이치라네.”
“선생님의 평생의 interest는 글쓰기, 스토리텔링이었고요.”
“그렇지. 글을 쓸 때 나는 관심, 관찰, 관계…… 평생 이 세 가지 순서를 반복하며 스토리를 만들어왔다네. 관심을 가지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을 하면 나와의 관계가 생겨."
그러니 이야기를 낳는 지금 우리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하냐고 선생은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는 항상 대화 속에서 만들어지나요?”
“『플라톤의 대화편』을 보게. 위대한 철학이 왜 대화에서 나왔겠나. 대화는 변증법으로 함께 생각을 낳는 거야. 부부가 함께 어린아이를 낳듯이. 혼자서는 못 낳아. 지식을 함께 낳는 것, 그게 대화라네. 내가 혼자 써도 그 과정은 모두 대화야. 내 안에 주체와 객체를 만들어서 끝없이 묻고 대답하는 거지. 자문자답이야. 그래서 모든 생각의 과정은 다이얼로그일세.
과거엔 나 혼자서 생각하고, 나 혼자서 다 만들어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이제 ‘이 글은 내 거야!’ 단언하지 않아. 따져보면 내 글이란 없는 걸세. 모든 텍스트는 다 빌린 텍스트야. 기존의 텍스트에 반대하거나 동조해서 덧붙여진 것이거든. 텍스트는 상호성 안에서만 존재해.”
“‘inter’의 산물이군요.”
“그렇지. 내 이야기 또한 자네의 말과 어우러져 의미가 분명해지고, 새롭게 해석될 거라고 믿네. 요즘 들어 더욱 대화의 위대함을 느껴.”
“과거엔 그렇게 안 느끼셨다는 말로 들립니다.”
“과거엔 에고가 강해서 나를 앞세웠지. 말년에 깨달은 거라네. 내 글은 반만 내 글이라는 걸. 언젠가 소설가 최인호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내가 한 이야기를 어딘가에 글로 썼더라고. 그런 것도 서로의 텍스트가 섞인 형태지.
인터뷰는 대담對談이 아니라 상담相談이야. 대립이 아니라 상생이지. 정확한 맥을 잡아 우물이 샘솟게 하는 거지. 그게 나 혼자 할 수 없는 inter의 신비라네. 자네가 나의 마지막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왔으니, 이어령과 김지수의 틈새에서 자네의 눈으로 보며 독창적으로 쓰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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