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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맘 칼럼] 존중은 물러서는 것이 아니다 – 사춘기 아이와의 적절한 거리두기 본문
*코칭맘 58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나쁜 정보를 막고 과한 사용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아이의 핸드폰 사용을 통제하려 들었다. 스크린 타임을 지켰는지, 어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지, 주로 어떤 영상들을 보는지···.
아이는 엄마의 통제 아래 사생활을 공유하는 일을 견디지 못해 미움과 분노가 자라났다. 핸드폰은 자신만의 암호로 꽁꽁 싸매고, 방문을 걸어 잠갔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예쁘다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소리를 질렀다.
“쫌! 제발! 내 허락 없이 좀 하지 마!”
남의 집 이야기로 들을 때는 어렵지 않았다. 사춘기 아이는 비밀이 많아지고 자기만의 세계를 세우니 과도한 관심은 불필요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라는 말이 맞다고. 그런데 우리 집에서 방문이 잠기고 대치가 시작되는 순간, 그 정답은 거대한 신화처럼 여겨졌다.
내게 남은 것은 보호 본능과 통제 욕구뿐이었고, 사춘기 아이를 향한 ‘적절한 거리두기’라는 말은 가장 어려운 숙제가 되었다.
불안은 어디서 오는가
부모의 통제는 대개 불안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불안은, 사실 꽤 오랫동안 유효했다.

아이가 어릴 때를 생각해 보라. 울면 안아 주었고, 배고프면 먹였으며, 넘어지기 전에 손을 잡았다. 그 세계에서 엄마의 개입은 사랑과 동의어였다. 아이와 나의 세계는 완전히 포개져 있었다. 아이가 아프면 내가 아팠고, 아이가 웃으면 나도 기뻤다.
십수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러니 ‘너는 나, 나는 너’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한다. 말수가 줄어들고, 부모가 건네는 말들을 잔소리로 치부한다. 오랫동안 하나의 세계였던 것이 둘로 분리되기 시작하는 그 순간, 부모는 깊은 혼란에 빠진다.
사춘기 뇌는 다른 언어로 말한다 — 지위와 존중을 추구하는 존재들
‘거리두기’라는 말은 요즘 좋은 관계의 미덕처럼 쓰이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에 갖다 대면 왠지 차갑게 느껴진다. 방임과 혼동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존중’은 어떠한가? 우리는 때때로 존중을 ‘Respect(존경하다)’의 개념으로 쓰지만, 관계 안에서의 존중은 ‘Regard(있는 그대로 여기다)’에 가깝다.
존중이란 상대가 어떤 상태든,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가지든 일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동의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지는 것도, 나의 신념을 꺾는 것도 아니다. 즉 “아, 너는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말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존중이다.
데이비드 예거는 《어른의 영향력》에서 청소년기의 가장 중요한 변화를 ‘지위와 존중의 느낌을 경험하려는 동기’라고 설명한다. 사춘기의 뇌는 사회적 지위와 존중에 민감해져 자부심, 감탄, 존중을 갈망하고 굴욕과 수치를 혐오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입을 열 때마다 행간을 읽으며 ‘나를 존중하나, 무시하나’를 본능적으로 판독한다. 어른들이 흔히 쓰는 방식, “너는 틀렸어”, “OO 하지 마”, “그건 절대 안 돼”라는 말들은 아이를 결함 있고 판단력이 부족한 존재로 전제한 채 가르치려는 방식이다.
이 말들이 사춘기 뇌에게는 이렇게 번역된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내 뜻대로 하는 게 좋아.”
그 순간 아이의 뇌는 대화를 멈추고 생존 모드로 전환한다. 말문을 닫거나, 폭발하거나, 방문을 잠근다. 아이들이 내뱉는 “내가 알아서 할게”는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폭발적으로 진화하는 뇌발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주도권을 지키려는 방어의 언어인 것이다.
적당히 물러설 줄 아는 대화들
그렇다면 부모는 어디까지 들어가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가. 구체적인 개입에 앞서 먼저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앞선 다섯 가지 질문 중 세 개 이상에서 멈칫하게 된다면, 지금 한 걸음 물러설 시간이다. 그리고 개입이 필요한 순간에는 존중의 언어, 그리고 이해를 동반한 진정성 있는 질문이 필요하다.
때때로 아이들은 합의한 경계를 넘을 때도 있다. 가령 친구들과 놀다가 귀가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경우, 많은 부모가 이렇게 말한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이런 식이면 곤란해.”
이 말을 들은 아이의 뇌는 즉시 방어 태세로 전환한다. 공격받고 있다는 신호가 켜지기 때문이다. 생산적인 대화는 여기서 끝난다. 그 대신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오늘 친구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는 건 알겠어.
그런데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그러고 싶었던 이유가 뭔지
엄마한테 설명해 줄 수 있어?”
이 질문은 아이를 비난하지 않는다. 아이의 경험을 인정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공간을 만들어 준다. 예거의 표현을 빌리면, 이것은 아이에게 ‘심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주는 것이다. 그 공간 안에서 아이는 비로소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내가 약속을 어기면 부모님이 걱정하시는구나.
다음엔 미리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결론은 부모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아이 스스로 찾은 것이다. 거리를 둔다는 것,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 존중한다는 것은 결국 같은 말이다.
“나는 네 세계가 네 것임을 안다.” 이것이 가장 높은 수준의 존중이고, 이 메시지가 반복될수록 지위와 존중에 민감한 사춘기의 뇌는 그 신호를 결코 흘려듣지 않는다.
충분히 좋은 엄마 (Good Enough Mother)
연휴 때 외할머니 댁에 다녀온 아이가 낡은 수첩을 내밀며 수줍게 말했다.
“이거 외할머니가 비밀이라고 했는데, 엄마 고등학교 때 다이어리래. 내가 진짜 몰래 보고 싶었는데 참았어.”
그 순간 내 허락 없이 손녀에게 내 과거를 건넨 엄마에 대한 배신감과, 나보다 더 나를 존중하며 허락을 구하는 딸에 대한 대견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방문을 닫은 아이에게 숱하게 존중의 마음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더 깊은 번민에 괴로워한 순간도 있었지만, 그 작은 씨앗이 아이 안에서 ‘존중’의 가치로 조용히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의 역할이라는 고민에 휩싸일 때마다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콧의 말을 떠올린다.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 충분히 좋은 엄마란 완벽히 통제하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의 거친 감정 앞에서 보복하지도 철수하지도 않고, 가까이 있으면서도 빼앗지 않으며, 때때로 어긋나도 다시 맞추는 회복의 리듬을 가진 부모다.

부모가 한 발 물러서는 순간은 패배가 아니라 관계를 살리는 기술이고, 아이가 존중을 체험할 공간을 남겨 두는 일이다. 아이는 그 공간 안에서 ‘내가 선택했고 내가 책임진다’는 경험을 조금씩 쌓아 간다. 그 경험이 충분히 쌓여야 어른의 조언도 ‘통제’가 아닌 ‘도움’으로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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